게임제작사 엔씨소프트에 데이터엔지니어로 지난 1월 입사한 이모씨의 전공은 언어학이다. 데이터엔지니어링은 각종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저장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업무다. 내년 2월 충남대 언어학과를 졸업하는 이씨가 전공과는 거리가 있는 IT 업계에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융합’의 힘이었다.
이씨가 ‘문송하다(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말로 대표되는 인문계 학생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던 건 교육부의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인문사회 융합인재 양성 사업(HUSS·Humanities-Utmost-Sharing System)’을 통해 언어학과 공학을 넘나드는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관련 주제로 졸업 논문도 썼다. 이씨는 “예를 들어 ‘혼밥러’ 같은 신조어의 뜻을 컴퓨터가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형태소 분석 방법을 연구했다”며 “이에 참고할 수업 등도 HUSS 사업을 통해 지원받았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HUSS 사업은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인문·사회와 이공 계열의 지식을 연결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지난해 4월 시작된 이 사업은 인문·사회계열을 중심으로 한 융합 교과·비교과 교육 과정을 만드는 대학 연합체 8곳에 각각 30억원을 투입하는 게 골자다.
각 학교와 연합체는 융합 교과 운영을 통해 학생들이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목표를 둔다. 예를 들어 국민대·덕성여대·울산대·인하대·조선대 연합체는 기후위기 시대의 공존과 상생을 주제로 다양한 수업을 개설했다. ‘빅데이터 분석과 시각화’, ‘기후변화의 국제정치’, ‘기후 인문학과 생태문학’ 등 계열을 넘나드는 주제가 융합된 수업이다. 고려대 등과 함께 ‘디지털 시대의 가치와 규범’에 관한 교육과정을 운영한 충남대 관계자는 “변화한 사회의 젠더, 인권, 법률, 문화, 소통 방식 등을 이해하기 위해 인문대 학생들도 파이썬(프로그래밍 언어)을 배우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HUSS 사업의 또 다른 축은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참여할 기업 탐방, 인턴 체험, 특강, 캠프, 공모전 등 비교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두 차례 기술인문 융합프로젝트 경진대회를 개최한 선문대에서는 올해 2월 ‘KPMG 아이디어톤’ 우승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이 대회는 다양한 전공의 대학생들이 인공지능 중심의 아이디어로 사회 이슈와 기업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프로그램 개발 대회다. 선문대 관계자는 “학내 경진대회 참가자는 다양한 계열의 학생들이 반드시 섞이도록 했다”며 “사회문제를 해결할 애플리케이션 제작을 통해 인문계열 학생들은 아이디어가 구현되는 기술을, 공학계열 학생들은 사회 현상과 수요를 교류하며 융합적 역량을 배웠다”고 말했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급격한 기술 및 사회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이해는 물론 인문학적 사고력을 갖춘 융합인재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위기를 맞고 있는 인문·사회계열의 대학들이 HUSS를 통해 활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